본문 바로가기
영화

영화 '파이트클럽' 줄거리 해석 스포일러 리뷰

by gastbynote 2023. 1. 30.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클럽' 리뷰이다.

 

미국 소설가 척 팔라닉의 소설을 원작으로 1999년에 개봉했다.

에드워드 노튼이 주인공 역을, 브래드 피트가 테일러 더든 역을 맡았다.

 

줄거리

 

영화는 테일러 더든이 주인공의 입에 총구를 집어넣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평범한 현대사회의 보험회사 사고 조사원이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이케아 카탈로그를 보며 값비싼 가구들을 사는 것이 유일한 그의 취미이다.

 

그는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불면증을 해소해 줄 약을 달라고 하지만

의사는 이에 불면증으로 죽는 사람은 없다며, 진짜 고통을 알고 싶다면 고환암 환자들이 모이는 곳에 가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들은 주인공은 고환암 환자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들의 모임 속에서

자신 또한 불치병을 앓는 척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고, 불면증도 낫는다.

주인공은 그런 모임들에 중독되어 여러 모임들을 매일 참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말라'라는 여자가 고환암 모임에 나타난다. 그 여자도 그처럼 가짜로 모임에 참여한 것.

점점 자신이 참여하는 모임에 계속 나타난다. 주인공은 가짜로 모임에 참석하는 그녀 때문에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그녀와 모임을 나눠서 나오는 것으로 합의. 그러면서 가끔은 모임의 일정을 바꾸자고 말하며 그녀의 번호를 묻는다.

 

 

여느 때처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주인공은 비누 판매상이라는 옆자리의 남자의 명함을 받는다.

그의 이름은 '타일러 더든'이다.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가스누출로 집이 폭발해 버린 광경을 보게 된다. 

그의 유일한 낙이었던 '완벽한' 가구들은 다 재가 되고 말았다. 오갈 곳 없어진 주인공은 말라에게 전화하려다가

타일러의 명함 속 번호로 전화를 건다.

 

타일러 더든과 주인공은 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주인공은 타일러 더든의 집에서 머물기로 한다.

그런데 그 대신 대뜸 타일러가 자신을 때려보라고 한다. 주인공은 망설이다가 타일러를 한대 치고, 그렇게 둘은 맨주먹으로 치고 박는다.

주인공은 왠지 모를 해방감과 희열을 느낀다. 다음에도 이어진 이 둘의 쌈박질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그렇게 '파이트 클럽'이 만들어진다.

 

 

웨이터일, 회사일 같은 지루하고 억눌린 사회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파이트클럽으로 점점 더 사람들이 모여든다.

파이트클럽은 순수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싸움을 벌이는 모임이었으나,

점점 물질문명에 저항하고자 하는 타일러를 따라 반사회적 테러단체로 거듭난다.

주인공은 점점 이들이 도가 지나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꼴이며,

타일러가 작전에서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초토화 작전'이 계속 진행되는 와중,

주인공은 타일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타일러를 찾는다.

 

 

[스포일러] 결말

더보기

 

주인공은 미국 전역에 있는 '파이트 클럽'들을 들리며 타일러 더든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

아무도 타일러 더든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한 회원이 시험하는 것이냐고 재차 물은 뒤, '당신이 더든씨 잖아요' 말해준다.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은 주인공과 동일인물이었다. 즉 또 다른 자아(인격)였던 것.

주인공 집을 폭발시킨 것도 타일러의 인격이었던 주인공 자신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인 타일러는 말라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이에 주인공은 경찰서에 가서 모든 것을 자백하려 하지만 경찰들 역시 타일러의 추종자들이었다. 

겨우 경찰서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스스로 빌딩 속으로 들어가 폭탄을 해체해 내지만, 타일러 인격에게 제압당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영화에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타일러 더든은 주인공의 입에 총을 겨눈다.

하지만 주인공은 사실 총이 타일러 더든이 아닌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입 속에 총을 넣고 쏘아 타일러 더든을 소멸시키고, 주인공은 피를 흘리며 살아남는다.

초토화 작전은 막기엔 이미 늦어 타일러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금융 관련 건물들이 모두 폭파된다.

주인공과 말라가 함께 무너지는 빌딩들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스포일러] 해석

 

반전을 밝히기 전에 복선이 계속 나온다.

대표적 복선으로 비행기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둘은 똑같은 서류 가방을 가지고 있다.

공중전화에서 수신 전화를 받는 장면 또한 복선이다.

극 중 '타일러 더든은 잠을 거의 자지 않는다'는 등 회원들의 소문 역시 복선이었다.

 

주인공의 이름 역시 한 번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말라에게 가끔 나눠서 나오는 모임의 일정을 바꾸자는 핑계로 번호를 묻는다.

주인공이 말라와 번호를 교환하는 장면에서 대놓고 말라가 이름이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

이때도 영화는 주인공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장면을 전환한다.

왜냐하면 타일러 더든이니까.

 

(그런데 영화에서 '잭'이라는 이름이 종종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이 '잭'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오인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타일러와 같이 쓰게 된 집에서 '나는 잭의 뇌이다' 같은 

장기를 의인화한 내용의 글들이 적힌 책을 읽는다. 

이후 '나는 잭의 상처받은 영혼' '나는 잭의 허송세월' 등과 같은 말들을 내레이션으로 내뱉곤 한다.)

 

이 영화는 성장 영화적 측면,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나는 영화의 각본 작가가 파이트 클럽을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했다는 점 또한 조금 짚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는 물질, 자본주의의 상징들이 등장한다.

스타벅스 커피와 이케아가 대표적이다.

 

 

두 모임: 영화에서 주인공은 두 가지 모임을 갖는다. 이 두 모임은 대조적이다.

 

고환암 모임과 파이트 클럽

 

'말라 싱어'가 나타난 모임

자유로워 보이는 말라 역시 세탁물을 세탁하고, 자신의 옷을 전당포에 파는 인물이다.

소비사회에 있는 소비자

고환암 모임은 남성성이 제거된 모임

서로를 의지, 위로하면서 눈물로 해소하는 모임

VS

'타일러 더든'과 함께 시작한 모임

문명에 저항하는 파이터

파이트 클럽은 남성성이 폭발하는 모임.

싸우면서 본능을 해소하는 모임.

 

 

타일러 더든: 비행기에서 타일러 더든을 만나기 전에도

타일러 더든의 모습이 아주 짧은 순간 깜빡거리며 나타난다.

(영화 속 말처럼 관객이 눈치 못 챌 수도 있는 정도.)

이는 어떻게 본다면 주인공이 타일러 더든이라는 자아를 만들어내기 전에

자신의 현실 속에서 불쑥불쑥 이 자아가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타일러 더든이 영사기사로 일할 때

아동용 영화에 포르노 장면을 짧게 잘라 붙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레스토랑에서 아무도 모르게 오줌테러를 하는 등 

반항적 태도가 코미디스럽게 묘사된다.

 

타일러 더든과 주인공이 욕실에 있는 장면

주인공은 상사와 싸우고 싶다고 하고, 타일러는 아버지와 싸우고 싶다고 한다.

물질문명,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은 타일러의 방식으로 함께 지내며 활기를 찾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지만, 파이트클럽은 점점 변질된다.

영화가 결말로 향할수록 파이트클럽에서 묘사하는 타일러식 '테러', '폭력'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쾌하고 찜찜함을 가져다준다.

결국 체제를 뒤엎고, 파괴하는 방식의 타일러 역시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주인공이 '난 눈을 떴어'말하는 장면도 스스로를 총으로 쏴 타일러를 사라지게 만드는 장면이다.

 

 

펭귄: 극 중 주인공은 모임에서 자신을 상징하는 자신의 내면 속 강인한 동물과 마주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주인공은 호랑이, 사자 같은 동물이 아니라 펭귄과 마주한다. 우리가 미리 상상했던 것보다 나약한 존재다. 날개가 있는데도 뒤뚱뒤뚱거리며 날지 못하는 조류이다. "미끄러지는 것"이나 가능하다. 또, 펭귄은 사회성을 가지고 무리생활을 통해서 생존해 나가는 동물이다. 이러한 점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개인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번엔 모임에서 자신을 상징하는 자신의 내면 속 강인한 동물과 마주해 보는 시간을 가질 때는,

주인공의 무의속 속에 들어온 말라가 주인공을 향해 건조한 표정으로 '미끄러져' 말한다.

어쩌면 당시 주인공의 무의식 중에는 말라에게 펭귄처럼 나약한 존재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타일러 더든이라는 자유분방하고 마초적인 이상적 남자를 발명해 낸다.

집이 폭발해 버린 뒤, 말라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끊고 타일러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 또한 이를 설명해 준다.

 

 

 

사랑을 위한 타일러 더든 발명:

말라를 만난 뒤, 타일러를 발명한다.

이동진 평론가는 말라 또한 타일러와 같이 가상의 인물일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같이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철학으로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타일러를 만나기 전의 주인공은 이런 자유분방한 성격의 캐릭터와는 결이 좀 다르다.

말라에게 주인공이 이름을 알려주기 직전, 장면이 전환되고 주인공이 출장 이후 타일러를 만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말라를 만나기 위해 타일러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추측된다.

타일러 집에서 살게 된 후, 말라의 전화를 받고 주인공은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그 수화기를 곧장 타일러가 든 뒤, 말라를 만난다.

 

말라와 식당에서 마주하는 장면에서도, 말라가 주인공의 장점으로 재미있고, 침대에서 끝내준다는 점을 든다.

이 역시 타일러(브래드 피트)의 자아로 발현되는 주인공의 장점이다.

 

 

결말 부분, 주인공의 자아가 죽고 타일러의 자아가 살아남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나는 그냥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타일러 더든이 말라를 처리하려고 하는 것 때문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총을 쏘고 나서의 주인공에게,

아니 영화에서 그것이 그리 중요할까 싶다. 주인공이 주인공의 모습으로 말라와 손을 잡는 장면이 더 중요해 보인다.

 


 

 

좋아하는 영화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러닝타임이 흐르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브래드 피트가 멋지다. 얘 말고 누가 타일러 더든 역을 할래?

결말 장면도 훌륭하다. Pixies의 Where is my mind? 는 안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더할 나위 없는 엔딩 곡.

평점 4.5/ 5를 주고 싶다.

 

짐 호버먼이라는 칼럼니스트는 이 영화를 두고 '남근주의로 떡칠한 억압적 장치들 속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심리적 사정행위를 목표로 삼는다'라고 혹평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번외로 브래드 피트가 편의점에서 일하던 남자에게 총구를 겨누던 장면을 생각한다. 지금 죽는다 치고 내 삶을 평가해볼까..

못 읽은 책들이 생각날 것이다. 연인과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사람들과 더 유쾌하게 지내지 못한 것,

내가 끔찍이 사랑하는 음악들, 연습부족으로 연주해보지 못한 곡들, 더 노력하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꿈.. 그런 것들이 생각날 것 같다.

 

그래. 모두 다 멋진 꿈을 이룰 순 없다.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인생은 짧고, 누구든 한번 살고 사라질 뿐이다.

 

 

 

우리는 노래하고 춤추는 세상의 쓰레기일 뿐이야
-타일러 더든

 

댓글